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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색욕과 수마를 극복하는 법
관리자  2012-04-09 10:32:40, 조회 : 1,742, 추천 : 352

제4장- 병통의 극복

5. 색욕色慾과 수마睡魔를 극복하는 법

색욕과 수마는 중생이 수천 수만 겁 동안 익혀 온 본능적인 습기習氣이다. 이것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없애기가 어려운 본능적인 욕망이다. 성욕이 없는 중생 없고 잠자지 않는 중생 없다고 했다. 중생이라면 색욕과 수마가 자연히 따라온다는 말이다. 이성과 잠에 대한 본능적 욕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견해와 태도는 기나긴 역사와 수많은 문화형태 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하다.

불교는 해탈의 길을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해탈에는 앎의 해탈과 행위의 해탈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성과 잠에 대한 욕망을 행위의 해탈을 가로막는 걸림돌 가운데 하나도 보고 있다. 욕망과 해탈은 삶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다암 그 삶이 욕망을 중심으로 한 갈등과 대립의 삶이냐 무아에 뿌리한 평화와 자유의 삶이냐가 다르다. 욕망을 인간에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해탈은 무아의 연기적 삶의 다른 이름이다. 참선 수행의 목표가 무아의 연기적 삶을 실현하는데 있다면 삶의 잘못된 습관인 욕망을 비우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 안에됴ㅗ 밖에도 실재하는 어떠한 실체는 없다. 본능적 욕망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실체적 실재가 아니라 실재한다는 착각에 의한 오래된 삶의 기억이자 습관일 뿐이다.

수마를 다스리는 법

현실적으로 수행자가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이 수마다. 얼마나 공부를 방해하기에 ‘잠 마구니' 곧 ‘수마'라 이름했겠는가 누구라도 방석 위에 앉아 조금만 정신을 내려 놓으면 금방 졸음이 밀려온다. 이 수마를 다스리는 법에 대하여 『몽산화상법어』에는 이렇게 말한다.

-수마가 올 때는 마땅히 이것이 무슨 경계인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깨닫자마자 정신을 바짝 차려 화두를 한두 번 소리내어 챙기도록 하라. 졸음이 물러나거든 하던대로 다시 자리에 앉고 그래도 물러나지 않거든 바로 땅에 내려와 수십 걸음을 걸으라. 그리하여 눈이 맑아지고 정신이 깨이거든 다시 자리에 앉아 천만 번 화두를 돌이켜 보고 끊임없이 채찍질하여 의심을 일으키라. 이렇게 오래오래 하다 보면 공부가 순일하게 익어 바야흐로 저절로 힘이 덜어질 때가 올 것이다.

-睡魔來當知是何境界 纔覺眼皮重 便著精彩 提話頭一二聲 睡魔退可如常坐 若不退 便下地行數十步 眼頭淸明 又去坐天萬照顧話頭 及常常便起疑 久久工夫純熟 方能省力 -『蒙山和尙法語』「示古原上人」

이와 같이 수마가 올 때마다 화두를 들고 채찍질하여 극복해 나가고 일상 생활 속에서도 조신調身을 잘하여 참선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마는 망념에서 온다. 그것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수행을 잘 해 나가다 보면 점점 수면 시간이 줄어든다. 수면 시간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좌선을 성실히 하면 저절로 수면에 끄달리지 않고 힘차게 생기 넘치는 정진을 해 나갈 수 있다. 이제 수마 극복을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참선 초학자는 눈을 감기 쉽다. 그러나 반드시 떠야 한다.

옛 조사는 눈을 감고 참선하는 자는 흑산귀굴黑山鬼窟이라 해서 캄캄한 산 속의 귀신굴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눈을 감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정신이 집중되는 듯하지만 저도 모르게 혼침에 떨어지기 쉽다. 특히 오후나 새벽에 좌선을 할 때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잠을 청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좌선할 때는 눈을 반쯤 뜨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수마가 걷잡을 수 없이 밀려닥쳐오걷근 어금니를 굳게 악물고 두 눈을 또렷이 뜨며 심호흡을 깊고 느리게 반복해 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대게의 졸음은 사라진다. 좌선 중에 절대 졸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앉아서 졸음이 쫓아지지 않거든 일어서서 온몸에 힘을 주고 나서 앞서와 같이 호흡읋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사라지지 않는 잠은 없을 것이다.

둘째, 음식 조절이다. 음심을 알맞게 섭취해야 한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좌선을 하게 되면 음식을 소화시키느라고 신체기관이 쉽게 피로를 느껴 금방 졸음이 밀려온다. 수행생활에 도움을 주는 음식을 알맞게 섭취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수행자가 그 양을 알아서 먹는다고 하는 것은 수행하는 정신자세를 바르게 하고 수행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므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一汁一採 선가의 식단이라 했다. 될 수 있으면 적게 먹고 소욕지족少欲知足해야 한다. 식사를 고르게 하지 않으면 필경 마음이 고르지 아니하여 공부가 한결같이 못하게 된다.

그러기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는 “수행하는 사람은 몸을 편안하게 하고 체중을 무겁게 해서는 안 된다. 음식을 적당하게 먹으면 몸이 가벼우지고 졸음이 적으며, 앉고 일어나고 걸을 때에도 숨이 가쁘지 않고 편안하며, 대변과 소변을 적게 보고ㅗ 자신이 닦는 수행에 있어서도 음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진다.”고 하셨다.

셋째, 일찍 지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저녁 참선을 오래하고 늦게 일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 저녁 공부 시간을 줄이더라도 아침 공부시간을 지키는 것이 좋다. 그러나 혹 피곤하다고 해서 저녁 공부를 건너뛰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 피곤할수록 정성들여 좌선을 해야 한다. 피곤한 밤의 삼십 분 참선은 다음날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한 두 간의 수면을 절약시켜 준다.

넷째, 허리를 곧게 펴고 바로 코 앞에 천길 절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 앉은 듯이 좌선을 한다. 수마를 극복하기 위해 실제로 절벽 위에서 좌선 하는 수행자도 있다.

다섯째, 호되게 경책을 주여야 한다. 지금 선방에서 하는 경책은 무척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간혹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책을 따끔하게 해야 한다. 경책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아끼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용맹정진과 장좌불와長坐不臥에 대하여 말씀드리겠다. 대개 선원에서는 연중 한두 차례는 수면을 전폐하고 칠일정도 용맹정진하는 기간을 갖는다. 평소부터 좌선 수행을 잘 해 온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용맹정진 기간은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 수면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장좌불와는 눕지 않고 마냥 앉아서 정진하는 것이다.

용맹정진 중에 졸기도 하는데 졸면 좌선이 아니다. 졸면서도 좌선코자 하는 정신은 가상하고 기특한 일이나 그것은 앉아서 잠자는 것이다. 공부는 마땅히 진실해야 한다. 태산처럼 자세를 가다듬고 공부를 면면밀밀하게 잡도리를 해 나가는 것이 구도자의 올바른 자세요 알뜰한 살림살이다.

색욕 다스리는 법

색욕과 파계 행위에 대하여 서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쩌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지르는 것과 같고, 도둑질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물이 가득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帶婬修禪 如蒸沙作飯 帶殺修禪 如寒耳叫聲 帶偸修禪 如漏巵求滿 -『禪家龜鑑』

색욕을 멀리하지 않고서는 참선 수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색욕에 기울면 마음이 혼란스러워 안정되지 못하고 메울 수 없는 갈애가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욕을 끊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는 “재물과 색은 마치 칼날 끝에 묻은 꿀과 같아 한 번 맛을 들이면 쉽게 끊지 못 한다. 재물과 색을 탐하는 것은 마치 어린애가 칼끝에 묻어 있는 꿀을 핥아먹는 것과 같다.”

-佛言財色之於人 譬如小兒 貪刀刃之蜜甜 不足一食之美. 然有截舌患也.-고 하여 재물과 색을 크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재물보다도 색욕이 중생들에게 더 큰 병이 됨을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 든 애욕 가운데 색욕만한 것이 없다. 색욕은 그 크기가 없다.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와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도 이 천하 사람으로 능히 도를 이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佛言 愛慾 莫甚於色 色之爲欲 其大無外. 賴有一矣 假其二普天之民 無能爲道者. -『四十二章經』24章

색욕을 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상감無常感을 절실히 관하는 방법을 권한다. 곧 색욕이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으면 그 극복이 가능하다. 그래서 색욕이 일어날 때는 그 색욕의 대상이 사대四大로 흩어지고 먼지로 변하여 이내 사라지는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란다. 색욕이 허망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화두 참선인은 화두 공부로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정도이다. 색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화두를 드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장』에서는 색욕 같은 지난 삶의 습習이 올라올 때 화두로 대처하라고 말하고 있다.

-별안간 옛날 쌓였던 습기가 일어나거든 그 곳에 대고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물음에 “무”라고 답한 화두를 볼 뿐이다. 바로 이러할 때에 그대의 옛 습기는 시뻘건 화로 위에 떨어지는 한 점의 싸락눈 꼴이 될 것이다.

忽爾舊習 瞥起 亦不著用心按捺 只就瞥起處 看箇話頭 狗子還有佛性也無 無正恁麽時 如紅鑪上一點雪相似

-『書狀』「答劉通判(一)」

색욕이 올라올 때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들게 되면 색욕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색욕과 수마는 광겁에 걸쳐 도를 성취하지 못하게 한 큰 원수임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성의 유혹을 물리치고 세상에 큰 감화를 준 어느 선사의 일화가 있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고승 태전太顚 선사는 조주潮州 땅 축령봉에서 수년간 수도에만 전념하여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당시 큰 문장가요 선비로 명망이 자자했던 한퇴지는 불교를 비방한 탓으로 좌천되어 그 지방에 내려와 분심을 삭히고 있었다. 그리고 덕 높은 태전 선사를 파계케 하여 불교를 깎아내릴 요량으로 그 고을에서 유명한 기생 홍련을 시켜 선사를 유혹케 했다.

태선 선사는 백일이 지나도록 담담히 무심할 뿐 조금도 움직임이 없었다. 결국 홍련은 선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화되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경망스러운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태전 선사는 일일 완수하지 못한 홍련에게 한퇴지의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이런 시를 써 주었다.

축령봉 내려 가지 않기 십 년 十年不下祝靈蜂

색을 보고 공음 봄에 색 그대로 공이네. 觀色觀空卽色空

어찌하여 조계의 한 방울 물을 如何一滴曹溪水

홍련 잎사귀에 떨어뜨릴 수 있으랴. 肯墮紅蓮一葉中

이와 같이 선사의 고결한 수행력과 청정한 덕행은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겼으며 삶에 귀감이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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