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

서암정사에서는 불기2558년을 맞이하여 원응큰스님 이하 서암정사 사대부중 모든 분들이 봉축행사에 참석하셔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기리기 위해서 대중과 더불어 법회를 여법하게 봉행하시었다. 관불행사는

그 동안 봉행하지 않으시다가 올해부터 경건한 마음으로 모시는 의식
을 가지게 되었다 철저한 고증과 증명 등으로 참여한 부자들이 마음이 청정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 날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라 하여 불탄일(佛誕日) 또는 욕불일(浴佛日)이라고도 하나, 민간 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석가의 탄생일이기 때문에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하던 축의행사 (祝儀行事)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됨에 따라서 불교 의식도 차츰 민속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라는 여러 가지 불교 행사가 성했는데,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 불교를 호국(護國)의 바탕으로 참여시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불교행사는 이전부터 전해오던 세시행사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병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의 팔관회(八關會)는 불교행사가 신라의 세시풍속으로 승화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월 초파일은 불도의 행사가 신라의 호국불교로 승화된 이래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조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민속과 동화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백제와 고구려 본기에는 불도의 행사가 세시의 행사로 거행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신라본기에서는 석가모니 탄생일을 팔관회로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왕성(王城)에서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 대보름에는 14일, 15일 이틀간 을 저녁에는 연등(燃燈)을 하던 풍속이 있었으나 최이(崔怡)가 4월 8일로 옮겨서 하게 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월 초파일은, 불교의 축의행사로 전래되었다가 민간의 세시풍속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신라의 팔관회, 고려의 연등회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나라의 부처님오신 날

대한민국, 중화민국, 마카오, 홍콩에서 공휴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일본에서는 공휴일은 아니나 양력 4월 8일, 음력 4월 초파일, 5월 어린이날 등 다양한 날짜에 지낸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맞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음력 4월 초파일을 석가탄신일로 보고 기념한다. UN에서는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대회의 안건이 받아들여져,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석가탄신일로 정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등불의 유래

우리나라는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형형색색의 등을 정성스럽게 제작하여 각 사찰 도량과 부처님 전 또 각 신도 가정에 밝히고 있다. 또한 각 사찰에서는 인등, 자명등 이라는 이름으로 법당 안 부처님 전에 불을 밝히고 있다. 

설일체 유부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등불 유래를 살펴보면 부처님 당시 "아사세" 왕이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법문을 청해 들을 때 동참한 모든 불제자들이 기름 등불을 켜서 법회자리를 밝힌데 서 유래된다.이때 난타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많은 사람들이 기름 등불공양을 올려 공득 쌓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복을 쌓고 싶었으나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복 인연을 맺을 수가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기름 한 되를 구하여 불을 밝혔다. 

아침이 되어 모든 불은 거의 꺼졌으나 이 난타의 불만은 꺼지지 않고 밝게 타고 있었다. 아난과 목건련 존자가 이를 보고 부처님께 여쭈니 부처님께서는 " 이 등불은 지극한 성심과 큰 원력을 가진 사람이 밝힌 등불이기 때문에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 하셨다. 이때 난타여인이 부처님 전에 예배하자 부처님께서는 "네가 오는 세상에 이 아승지겁을 지나 부처가 되리니 이름을 동광여래라 할 것이다."고 수기를 내리셨다. 난타는 감시하며 출가하기를 청원하여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되었다.

 이때부터 큰 원력을 세운 사람은, 부처님 전에 지극 정성으로 기원봉양하면 무량한 공득을 입을 수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 전에 등불을 밝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고 자신의 지혜를 밝히게 되었다.

등불 밝히는 뜻

 화엄경에 "믿음을 심지삼고, 자비를 기름으로 삼으며 생각을 그릇으로 하고 공득을 빛으로 하여 삼독(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없앤다."고 말씀하셨고 열반경에는 "중생은 번뇌의 어두움 때문에 지혜를 잃는데 비해, 여래는 방편으로 지혜의 등을 켜니 모든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중생의 번뇌와 삼독으로 인해 불성보배를 보지 못하고 있음을 표명한 것이며 부처님께서는 곧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투시어 중생들이 지혜로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봉축등을 밝히는 불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며 봉축축제에 임해야 겠습니다.

 등불을 밝히는 마음가짐

1. 부처님께서 오신 성탄절을 진심으로 봉축하며 불은에 감사드립니다.

2. 부처님의 진리의 빛에 귀의하고 정진하겠습니다.

3. 부처님의 밝은 해탈세계에 이르고자 중생의 어두운 무명번뇌를 맑히게습니다.

4. 중생의 삼독심( 탐심, 진심, 치심)을 녹여 부처님 지혜 광명을 얻도록 노력하겠습니다.

5. 등불이 주위의 어두움을 밝히듯 친지와 이웃에게 이익 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6. 바르고 큰 원력을 세워서 부처님 큰 가피를 내리시길 기원드립니다.

 
제등행렬의 의의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은 국가적 경축일로 전 국민이 등불을 켜던 옛 풍속을 오늘에 되살리고, 사회의 어두움을 부처님 진리로 밝히려는 숭고한 의도를 선포하여 전 민족적 제전으로 거행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고, 또한 불교도들이 일 년간 정진해온 내적 신심의 외양적 표출이기도 하며, 종교적 집단의 정성과 단합의 힘을 과시함으로서 비종교인의 불교에의 호감을 고취하여 교세 신장면에도 그 몫이 크다 하겠다.

이 제등행렬은 통일 화합 결속의 저력을 배양하여 전체적인 미래의 목적을 이루고자 거행하는 정성과 힘의 결정이며 불은에 감사하고 그 가피력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법회다.모든 불교도는 이 거룩한 제등행렬 법회에 동참하여 석가모니불 정근을 높이 합송하며, 행렬 가운데의 모든 등불의 빛이,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응집되어 그것이 불타의 자비광명 자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자세로 임해야 겠습니다.


연등공양의 기원

등(燈)을 밝히는 것은 연등(燃燈)이라 하고, 그 밝힌 등을 보며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을 관등(觀燈)이라 하는데, 이는 부처님 당시부터 시작된 아주 중요한 불교의식의 하나입니다.  <아사세왕수기경>에 보면 연등(燃燈) 공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아사세왕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권력이 탐나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어 인도대륙을 통일하는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큰 업적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야 했습니다.아사세왕은 자신의 죄를 조금씩 느껴가면서 마음이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의 유명한 의사를 불러 와서 치료를 했지만 병은 점점 약화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버지를 해친 저의 참회를 받아 주소서, 저는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하나이다.” “지금이 바로 자신을 돌아보아 참회할 때이니라, 지금 이 순간 때를 놓치지 말고 참회하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허물이 있을지라도 바로 고치면 훌륭한 사람이니라.

“ 아사세왕은 이러한 진실한 참회를 통하여 흉하기만 하던 종기가 말끔히 낫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사세왕은 훌륭한 불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을 궁궐에 모시고 법문을 들으며 공양을 올렸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궁궐에서 기원정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사세왕은 자신의 마음의 무명을 밝혀 주신 부처님께 연등(燃燈) 공양을 올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사세왕은 자신의 궁궐에서 시작하여 기원정사까지 수많은 연등(燃燈) 을 밝히게 되니 그야말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불자들은 부처님의 지혜광명을 상징하는 연등(燃燈) 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처님 오신 날 연등(燃燈) 에 관한 기록은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한 것이 최초입니다. 그 후 궁중에서도 사월 초파일날 연등(燃燈) 이 밝혀졌다고 하며, 공민왕은 초파일날 직접 연등(燃燈) 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일반 서민층까지 연등(燃燈) 공양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수많은 연등회 행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nmcwu.or.kr/zbxe/9504국립의료 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