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정사 금니 화엄경

서암정사에 금니화엄경전시 개관식이 열리는 날 벌써 며칠 째 하늘 구멍이 열린 듯 비가 퍼붓고 있었고 개관식이 열리던 바로 그 다음날까지도 계속 비가 퍼붓는다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바로 이날을 하늘도 화답하는 것일까 이미 서암에서는 행사 준비로 분주했고 연이어 금니사경 전시 기념관에서 옥불 부처님 점안식이 열렸다. 대만 자광사에서 오신 스님들과 한국측 점안식 진행 스님들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온 법당 안을 가득 채우니 바로 장엄 그 자체였다. 밝고 온누리에 광명을 주시는 옥부처님의 모습과 그 뒤로 펼쳐진 금니 화엄경의 모습을 이 생에서 친견할 수 있는 중생들은 전생에 이미 큰 공덕을 쌓은 인연이 있으리라.

원응 노사께서는 크나큰 업적을 세 가지를 이루어 놓으셨다
그 첫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고
그 둘째가 지리산에 석굴법당을 장엄하신 일이며
그 세째가 화엄경 금니 사경을 완성하셔서 잊혀져가는 사경통선의 전통의 맥을 재확립하신 일이다. 

원응 노사께서 금니 화엄경을 필사하시는 과정에서 위기가 여러 차례 있으셔서 세연이 다 하신 것으로 여기셨던지 노사께서 비로서 공개하신 일이 있다. 바로 경허스님의 법맥을 이으신 전법게를 공개하셨다 상좌스님들도 전혀 모르시고 지나온 세월이 몇 십년이었다 자신이 하신 모든 일은 발설조차 안 하시는 노사께서는 "자신이 한 일이 장엄하다 하여 공개를 한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我'가 티끌만치라도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노사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화엄경 금니 사경을 하시려고 우선 초본으로 먹사경을 하셔서 완전한 화엄경을 정리하셨는데 팔만대장경. 중국. 일본의 화엄경을 검토하신 후 금니 사경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셨다. 60여 만자를 쓰시는데 한 순간이라도 마음이 일탈되면 귀중한 작업을 망칠 염려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하루에 귀중한 금니로 수 백자 씩을 써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상태에서 작업을 하시다 보니 당연히 눈에 이상이 오게 되어 도중에 실명의 위기도 여러 차례 겪으셨고 무수한 어려움을 기어이 모두 극복하시고 사바세계에 위업으로 남을 대방광불 화엄경이 금니로 서암정사에서 탄생하게 되었지요.


“은.법사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화엄경 사경이 남아 있는 게 없다고 참 아쉽게 얘기하셨어요. 이북 금강산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모든 불사가 다 원願을 가지고 하듯 지리산 희생영가의 명복을 빈다는 발원을 가지고 15년에 걸쳐 80권 화엄경을 완성했어요.” 문맥이 이상하거나 오자誤字라는 느낌이 들면 여러 권을 대조해 가며 사경을 하다 보니 10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지요. 

“고려의 선인들은 몽고침탈의 와중에 목판에 팔만대장경을 새겼는데, 그 체험을 하지 못할망정 사경할 바에는 완벽하게 해야죠. 오자 내며 할 일 있겠어요?” 

좀처럼 전시회를 하지 않는 스님이지만 한 번 열었다하면 관람객 1만여 명을 훌쩍 넘겨 문화계를 놀라게 했지요. 2000년 부산, 2001년 서울, 2004년 대구에 이어 네 번째로 개최한 지난 3월 대만 전시회에는 2만여 명이 방문하셨는데 중국의 서예대가들로부터 스님의 서체에 대해 극찬을 하셨다. 중국의 서예가들은 구체적으로 낱자를 지적해가면서 글씨의 예술성을 지적하시는 것으로 봐서 그냥 의례적 칭찬만은 아는 듯 하였습니다. 당시 사경을 친견한 관람객들은 ‘심사유곡에 석굴과 불상을 조성한 법사의 수행'을 찬탄하고 눈물을 흘리는 참배객이 상당수 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전시회 기간에 모아진 보시금(약 1억원) 전액을 13개 단체에 희사한 사실이 중국시보中國時報, 인간복보人間福報 등 유수의 언론을 통해 알려져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것마저 스님에게는 ‘내 세울 일이 아니다'. 노사께서는, 불사를 많이 해 놓고 찬사를 듣고 싶어 하는 양무제에게 달마스님이 던진 ‘소무공덕所無功德'을 얘기를 꺼냈습니다. 

“마음 가운데 털끝만큼 이라도 공덕이라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얘기거든. 공덕의 그림자마저 지워버린 연후에 얘기하라는 것이죠.” 불사해서 무엇을 이뤘다는 그 생각이 남아있는 만큼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노사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참모습은 형상에 있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형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형상을 통해 부처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기 위한 것이 불사입니다. 그 불사를 통해 부처님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부처님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 그게 바로 중생제도라.” 그런 점에서 “모든 불사는 바로 불심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설치예술”이다. 

“그래서 자기 모습을 지워가는 게 참수행이라 봅니다. 이것이 내가 한 불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옳은 불사가 아닙니다. 나도 내 모습을 모두 지우지 못한 사람이지만 내 모습을 지우는 것이 참수행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이 내 나름대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세계를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마지막에 가서 그런 그림자마저 지우는 것이 수행이라고 봐요.”

서암정사에 화엄경 금니 사경 전시장이 개관은 사경수행장이 필요하다는 여러 스님들의 의견이 있으셨고 또한 중국 자광사의 원교스님께서도 이 인연에 깊히 동참하셨다 스님께서 우연히 지리산 근처에서 길을 잃으시고 찾아 오신 절이 바로 서암정사이시며 주지 법인 스님으로부터 원응 노사께서 이루신 석굴법당과 화엄경 금니사경에 대한 불사를 들으시고 크게 감동하시어 후일 대만 전시회를 가지게 되는 인연의 다리를 놓으셨다 이후 여러 차례 해외전시를 하는 과정을 보신 원교스님께서 해외전시가 매우 힘들고 또한 금니사경 훼손 우려도 있다 하시어 원응노사께 금니사경 전시장을 서암에 중건하시어 안착기키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하시게 되고 이에 원응 노사께서 흔쾌히 승낙하시어 대작불사가 또 한 번 이루어 지게 되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서암에 인연이 되시는 불자들께서는 서암에 가시면 석굴법당에 참배하고 금니사경 전시장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사경을 하시는 공덕도 지으시면 좋은 인연을 맺게 될 것입니다

자손만대에 길이 빛날 대작불사 화엄경 금니 전시장 개관으로 인해 우리 불자들은 잊혀져 버릴 수도 있었던 사경수행으로 다시 한 번 부처님의 세계에 갈 수 있는 길을 통로를 열게 해 주신 원응노사께 깊은 은혜의 감사를 올립니다.